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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예측 기계다 — 착시가 생기는 이유를 정보이론으로 풀면

by H.Sol 2026.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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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예측 기계다 — 착시가 생기는 이유를 정보이론으로 풀면

> 채널: 앨컴 통섭 연구소 | 분류: 신경과학 × 정보이론 | 작성일: 2026-07-26

뇌는 예측 기계다 — 착시가 생기는 이유를 정보이론으로 풀면
사진:
CHUTTERSNAP
/
Unsplash

알고 나서도 계속 속는 그림 한 장

그림 한 장을 가만히 본다. 흑백 체커보드 위에 원기둥 하나, 그 원기둥이 드리운 그림자가 격자 위를 가로지른다. 인터넷에 꽤 유명한 이미지다 — 에드워드 애들슨(Edward Adelson)이 만든 체커보드 그림자 착시.

그 안에 A 칸과 B 칸이 있다. A는 그림자 바깥의 어두운 격자고, B는 그림자 안의 밝아 보이는 격자다. 누가 봐도 A가 어둡고 B가 밝다. 같은 색일 리가 없다.

그런데 두 칸의 실제 명도(brightness)는 정확히 같다.

> [이미지: 애들슨 체커보드 그림자 착시 — A 칸과 B 칸은 같은 명도다. 지금 화면에서 두 칸 사이에 손가락을 올려 연결해보면, 그 순간 두 칸이 같아 보이기 시작한다. 손을 치우는 순간 B가 다시 밝아 보인다. / 이미지 출처: Edward Adelson, MIT, 퍼블릭 도메인]

이 사실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대부분 같은 반응을 보인다. "그럴 리가 없다." 설명을 다시 읽어봐도, 두 칸 사이에 선을 그어 비교해봐도, 알고 나서 다시 봐도 — B가 여전히 A보다 밝아 보인다. 지식이 지각을 바꾸지 못한다. 여기서 이상한 질문이 하나 생겼다.

내 눈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나도 그 이유가 오래 궁금했다

카메라는 저 두 칸을 같은 명도로 찍는다. 스마트폰으로 화면을 찍어 픽셀 정보를 보면, A 칸과 B 칸의 밝기 값은 같게 나온다. 기계는 현실을 그대로 기록하는데, 뇌는 다르게 본다.

처음엔 이게 뇌의 실수라고 생각했다. 눈이 불완전해서 오차가 생기는 것이라고. 합리적인 결론이다. 그런데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이 "실수"가 모든 사람에게, 항상, 같은 방향으로 일어난다.

오류라면 사람마다 다르게 실수해야 한다. 그런데 이 착시는 뇌 기능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같은 방향으로 작동한다. 일관된 오류는 오류가 아닐 수 있다. 겪어보면 그 느낌이 온다 — 뭔가가 이 착시를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감.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나는 A와 B가 같은 명도라는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두 칸 사이에 선을 그어보기도 했고, 설명을 다시 읽기도 했다. 결국 같다는 게 맞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했다. 그런데 눈이 말을 듣지 않았다 — 다시 봐도, 알고 봐도, B가 여전히 더 밝았다. "안다는 것"이 "보이는 것"을 바꾸지 못한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고, 그 오해가 이 글의 시작이다.

착시는 뇌의 실수가 아니라, 뇌가 일하는 방식 자체의 부산물이라는 설명이 있다. 그 설명은 신경과학에서 왔고, 정보이론에서도 왔다. 그리고 두 곳은 놀랍게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신경과학의 렌즈: 뇌는 감각을 그대로 보지 않는다

1999년, 라지쉬 라오(Rajesh Rao)와 다나 발라드(Dana Ballard)가 Nature Neuroscience에 흥미로운 모델을 발표했다.

핵심 아이디어는 이것이다. 높은 단계의 시각 영역이 낮은 단계에 예측 신호를 보낸다. "이렇게 보일 것이다"라는 신호다. 그러면 낮은 단계는 실제 감각 신호와 이 예측을 비교해서, 차이(예측 오차)만 위로 올려 보낸다. 감각 정보를 그대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예상과 달랐던 것"만 전달하는 구조다.

> "Feedback connections from a higher- to a lower-order visual cortical area carry predictions of lower-level neural activities, whereas feedforward connections carry the residual errors between the predictions and the actual lower-level activities."

풀이: 높은 시각 영역은 예측을 아래로 내려보내고, 낮은 영역은 예측과 실제 감각의 차이(오차)만 위로 올려보낸다.

예측을 아래로, 오차를 위로. 이것이 예측 부호화(predictive coding) 이론의 핵심이다.

2018년 Keller와 Mrsic-Flogel은 Neuron에 발표한 리뷰 논문에서 이 계층 구조를 정리한다. 상위 시각 영역에서 하향식 예측이 내려오고, 하위 영역에서 상향식 오차 신호가 올라가는 루프. 이 구조를 읽다가 내가 멈춘 지점이 있었다 — 이 모델에서 정상적으로 전달되는 것은 "예측에서 벗어난 정보"다. 예측과 일치하는 감각 신호는 위로 가지 않는다.

뇌는 이미 예상한 것에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예상을 벗어난 것만 위로 올린다.

Edwards et al. (2017, Muckli 연구실)은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을 보여준다. 가현운동(apparent motion) — 실제로 움직이지 않지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자극 — 조건에서, 뇌가 예측한 운동이 일차 시각 피질(V1)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뇌는 감각 입력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예측을 보내고 있다는 뜻이다.

자, 이걸 체커보드에 다시 대입해보자.

B 칸 위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우리 뇌는 평생 수십만 번 "그림자 아래는 원래 더 어둡게 보인다"는 경험을 쌓아왔다. 그 경험이 사전 지식(prior)이 된다. 그래서 B 칸을 볼 때, 뇌는 "그림자가 있으니 실제 색은 망막에 들어온 신호보다 밝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린다. 그 예측이 실제 감각 신호를 덮어쓴다.

뇌가 잘못 본 게 아니다. 미리 본 것이다.

다만 솔직하게 덧붙여야 할 게 있다. 예측 부호화는 착시를 설명하는 유력한 이론이지, 확정된 정답은 아니다. 카니자 삼각형(Kanizsa triangle)처럼 존재하지 않는 윤곽선이 보이는 착시를 예측 부호화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는 연구자들 사이에 열린 물음이다. 어느 원리가 어떤 착시를 주로 설명하는지는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 예측 부호화는 지금 가장 넓은 설명력을 가진 프레임이지만, 유일한 프레임은 아니라는 점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정보이론의 렌즈를 겹치면 보이는 것

여기서 전혀 다른 학문이 등장한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눈에서 뇌로 들어오는 정보는 얼마나 될까. 신경생리학자 Zimmermann이 1986년에 추정한 값은 오감 전체 합산으로 초당 최대 약 1,100만 비트(bits) 정도다.

그런데 의식이 처리할 수 있는 정보는 이것과 차원이 다르다. 같은 Zimmermann의 추정으로는 약 40 bits/초, Nørretranders가 1998년 《The User Illusion》에서 정리한 값으로는 약 20 bits/초 수준이다. 연구마다 추정치가 조금씩 다르지만, 여러 연구에서 보고되는 범위는 대략 약 20~60 bits/초 언저리다.

그러니까 뇌로 들어오는 정보와 의식이 다루는 정보 사이에는 수십만 배(약 18만~55만 배)의 격차가 있다. 그 격차를 채우는 것이 압축이다. (엔트로피와 정보 압축의 관계가 더 궁금하다면 → [엔트로피로 보는 방 정리](/entropy-room-organization))

압축을 어떻게 할까. 정보이론에서 효율적 부호화의 기본 원리는 단순하다 — 예측 가능한 것은 버린다. 이미 알 수 있는 것은 저장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패턴, 규칙적인 변화는 압축되고, 새롭고 예측 불가능한 것만 전달된다.

나도 매일 걷는 출퇴근길에서 뭘 기억하는지 돌아본 적이 있다. 남는 건 늘 평소와 다른 것들뿐이었다. 늘 있던 가게가 없어졌다거나, 낯선 사람이 서 있다거나. 뇌는 익숙한 것을 기록하지 않는다.

여기서 이 글의 핵심 순간이 온다.

신경과학은 말한다. "뇌는 예측 오차만 위로 보낸다." 정보이론은 말한다. "효율적 부호화는 예측 가능한 것을 버린다." 두 문장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다른 언어로, 다른 문제를 연구하다가, 같은 원리에 닿았다. 신경과학의 "예측 오차"는 정보이론의 "잔차 신호(residual signal)"와 구조가 같다.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곧 효율적 부호화의 생물학적 구현이라는 뜻이다.

수식 없이 다시 풀어보면 이렇다.

최종 지각 = (현재 감각 증거) × (과거 경험 기반 기댓값)

체커보드에서: 망막은 "A와 B의 명도가 같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뇌에는 "그림자 아래는 어둡게 보이는 게 정상이다"라는 수십 년의 경험이 사전 지식으로 새겨져 있다. 두 신호가 결합된 결과가 최종 지각이다. 그리고 이 경우, 과거 경험이 훨씬 강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B가 더 밝게 보인다. (확률과 기댓값이 일상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 [복리는 물리학이다](/compound-interest-physics))

Karl Friston은 이 원리를 "자유 에너지 원리(Free Energy Principle)"로 통합한다. 뇌의 모든 활동은 기본적으로 예측 오차와 불확실성 — 정보이론 용어로 엔트로피 — 을 함께 최소화하려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착시는 이 최소화 과정이 실제 물리 세계와 어긋났을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론화된다.

Andy Clark은 2013년 Behavioral and Brain Sciences에 발표한 논문 "Whatever Next?"에서 이렇게 정리한다.

> "Brains, it has recently been argued, are essentially prediction machines. They are bundles of cells that support perception and action by constantly attempting to match incoming sensory inputs with top-down expectations or predictions."

뇌는 본질적으로 예측 기계다. 상향식 감각 입력과 하향식 기댓값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세포 묶음이다. Clark(2013)이 이 표현을 쓴 것은, 신경과학에서 이 방향의 연구가 쌓이면서 점점 영향력을 얻어가던 흐름을 정리한 것이다.

착시의 구조가 이제 선명해진다. 뇌가 잘못 보는 게 아니라, 잘 예측하다가 현실과 어긋난 것이다. 그리고 그 어긋남은 어쩌다 일어나는 게 아니라,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모든 예측 기계에서 피할 수 없는 부산물이다.


오늘 다르게 볼 수 있는 것 하나

이 관점이 일상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다는 걸, 돌아보면 안다.

대화 중에 상대방이 말을 채 끝내지 않았는데 이미 무슨 말인지 안다고 느끼는 순간. 뇌가 문맥과 말투와 이전 대화를 바탕으로 다음 단어를 미리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상대의 실제 말이 예상과 다를 때, "아, 내가 잘못 들었네"라고 느끼는 그 순간 — 예측 오차가 의식으로 올라온 순간이다. 착시와 같은 뿌리다.

어두운 방에서 익숙한 물건의 일부만 보이는데 뭔지 바로 안다. 뇌가 "이 형태면 이 다음엔 이 부분이 나올 것"이라는 사전 지식으로 나머지를 자동 완성한다. 때로는 그 예측이 틀려서 낯선 물건을 익숙한 것으로 착각한다. 체커보드와 구조가 같다.

나도 급히 읽다가 이름을 잘못 읽은 적 있다. 눈이 나쁜 게 아니라, 뇌가 문맥으로 단어를 미리 예측하고 시각 정보를 그 예측 위에 덮어씌운 결과다. 이런 순간이 쌓이면 "나는 왜 이걸 이렇게 봤을까"라는 질문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오늘 하나만 가져간다면 이것이다.

뭔가를 잘못 봤다 싶은 순간 — 잘못 읽은 단어, 착각한 상대의 표정, 예상과 다른 말 — 그 순간에 "지금 뇌가 무엇을 미리 봤길래"라고 한 번 되짚어보는 것. 그게 이 관점을 머릿속에서 몸으로 가져가는 방법이다.


뇌가 실수한 게 아니라 세계가 원래 그렇다

착시는 버그가 아니다. 뇌가 세계를 감당하는 방식의 부산물이다.

만약 뇌가 예측 없이 매초 1,100만 비트가 넘는 정보를 있는 그대로 처리해야 했다면, 커피잔 하나를 집어 드는 것도 과부하가 걸렸을 것이다. 착시는 그 압축의 대가로 우리가 내는 요금이다. 예측이 너무 잘 작동하는 바람에 현실과 어긋난 순간의 흔적.

이렇게 보면 세계가 조금 달라진다. "나는 왜 이걸 이렇게 봤을까"라는 질문이 "뇌가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을까"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착각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착각을 만드는 기계의 작동 방식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음엔 이 예측 기계가 감정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이야기해볼 생각이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 오는 순간 — 그것도 예측과 오차의 산물일 수 있다. 그 이야기도 뇌라는 같은 기계 안에서 일어난다. (뇌가 감정을 예측한다는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 [감정도 예측이다 — 뇌가 기분을 만드는 방법](/emotion-prediction-brain))


참고 자료

  • Rao, R.P.N. & Ballard, D.H. (1999). Predictive coding in the visual cortex: a functional interpretation of some extra-classical receptive-field effects. Nature Neuroscience, 2, 79–87.
  • Keller, G.B. & Mrsic-Flogel, T.D. (2018). Predictive Processing: A Canonical Cortical Computation. Neuron, 100(2), 424–435.
  • Edwards, G. et al. (2017, Muckli 연구실). Predictive feedback to V1 dynamically updates with sensory input. Scientific Reports (PMC5705713).
  • Clark, A. (2013). Whatever next? Predictive brains, situated agents, and the future of cognitive science. Behavioral and Brain Sciences, 36(3), 181–204.
  • Friston, K.J. (2010). The free-energy principle: a unified brain theory? Nature Reviews Neuroscience, 11(2), 127–138.
  • Zimmermann, M. (1986). Neurophysiology of sensory systems. In R.F. Schmidt (Ed.), Fundamentals of Sensory Physiology. Springer.
  • Nørretranders, T. (1998). The User Illusion: Cutting Consciousness Down to Size. Vi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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